이상한 용손 이야기_성숙한 시민, 용손
곽재식 작가는 TV에서 처음 봤다.
공학 박사라는 독특한 이력은 그렇다 쳐도, 괴수에 빠져 있다는 아주 특이한(?) 관심사 때문에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
공학 박사가 괴수에 관심을 가지면 소설 속에서 무슨 일을 벌이려나 좀 무서웠었다보다.
얼마 전 공공도서관 서가를 어슬렁거리며 무슨 책이 있나 살펴보다가, 우연히 '동화에서 소설로 넘어가는' 아이들을 위한 얇은 책들을 보게 됐다.
정세랑, 곽재식, 김초엽, 권여선...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이 만들어준 동화와 소설 간의 오작교랄까?
이 책은 그 중 하나다.
'용손'은 용의 손자이고, 주인공의 엄마가 용의 자손이다.
아빠는 아들이 용손이라는 게 알려지면 실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아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애쓰지만...
어쩌랴, 등에 엄마처럼 비늘이 돋아나고 기분이 평소와 다른 날이면 유독 그 동네에만 일기예보에도 없던, 슈퍼 컴퓨터도 예측하지 못했던 비가 내리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자신의 감정 변화 때문에 내리는 비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인공은 나름의 감정 조절법도 익히고 기상청에 특정한 날의 날씨를 스포(!) 해서 사람들이 날씨에 대비할 수 있도록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난생 처음 겪어보는 격한 감정, 도무지 조절할 수 없는 그 감정, '사랑'을 느끼게 되자 어쩔 줄 몰라한다.
이 책의 마지막은 굉장히 독특한 형식이다.
갑자기 출판사와 작가 곽재식이 등장한다.
마치 옛날 이야기 끄트머리에서, '여기까지가 전해오는 얘기입니다. 먼 훗날 들려오는 말에 따르면~' 하는 식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머무르는 지역에 비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는 행동은 귀엽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고 좀 웃기기도 하다.
자신의 감정으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고민하고 행동했다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뭘까?
정체성을 고민하는 소년? 감정을 절제하는 소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제하기 힘든 사랑이라는 감정?
그게 어떤 것이든,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이 장떼비를 가랑비로 바꾸려고 했던 행동, 존재를 숨겨가며 기상청에 날씨를 알리려 했던 행동, 그리고 마지막에 했던 행동이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피해를 보게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했을 행동들.
소년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지닌 용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