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보다 하이큐!
'슬램덩크' 세대지만,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뒤늦게 슬램덩크를 접했다. 그것도 만화책이 아닌 비디오로...
드라마든 영화든 영상을 보고 울기는 잘해도 맘 졸이거나 소리지르는 일은 없었던 내가, 조마조마한 장면에서는 손 모아 응원하고 호쾌한 장면에서는 소리 지르며 봤던 영상이 '슬램덩크'였다. 이번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기에 앞서 내용은 고사하고 등장 인물들조차 가물가물해진 기억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한번 예전 영상을 복습(!)하고 영화관을 찾은 모범생다운(!) 모습을 갖추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아니면 20대 때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은 다른 걸까?
예전 시리즈에서 작화의 옛스러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다소 거슬리긴 했다. 얘네가 고등학생이야 조폭이야 싶은 폭력적인 장면이 많은 것도 그렇고(다들 외모가 늙수그레 해서 더 그렇다) 왜 서태웅과 강백호는 서로를 못마땅해하고 견제하기만 하는가(서태웅보다는 강백호 쪽이?) 하는 느낌도 들었다. 영화에서 송태섭의 이야기는 사실 진부한 면이 많아서 그 스토리만큼은 좀 실망스럽기도 했다.
(이래서 난 '무조건적인 찐팬'이 되긴 글렀다니까~)
그래도 스포츠 만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열정과 패기를 다시 느낄 수 있어 좋다고 여겼는데...
최근에 배구를 소재로 한 '하이큐' 시즌 4개를 연달아 보고 난 뒤 마음이 아주아주 편해졌다.
얘들은 3학년 애들을 제외하고는 일단 외모 면에서는 고등학생같다, 싸우는 것도 투닥거리는 수준이어서 맘 편히 볼 수 있다.........이런 건 부차적인 거고...
아주 예쁜 청소년 성장 만화를 보는 것 같아 기특하고 뿌듯하달까?
카라스노 고등학교 1학년 히나타와 카게시마가 주인공 격이라 할 수 있고, 이 둘도 능력 차가 있다는 면에서 그리고 투닥거리기를 잘 한다는 점에서는 강백호-서태웅과 비슷하지만 그래도 이들 사이에는 인정과 협동이라는 게 있다. 무엇보다 특정 학교의 특정 인물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여러 인물에게 그리고 재능이 출중한 인물뿐만 아니라 꾸준하고 성실하게 루틴을 쌓아가는 평범한 인물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부여한다는 게 이 작품 최대의 미덕이다. 상대팀에게 으르렁대는 태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유도하고 단점을 일깨워 극복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도 아주 이상적이다.
어쩌면 현실과는 다를지도 모를, 그래서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를 작품.
아이들에게 스포츠를 소재로 한 만화를 보여줘야 한다면 슬램덩크보다는 하이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