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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생각하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_독서 권태기 극복에 최고!

by 나는 나인 나 2022. 4. 30.


우연히 ‘유 퀴즈 온 더 블록’ 151회를 봤다.
그중 승정원일기를 번역하시는 분께서 정조 얘기를 하시던 중에 초계문신 제도를 말씀하셔서 오랜만에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하 성균관)’과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이하 규장각)’이 떠올랐다.
오래전에 친구 추천으로 ‘성균관’을 종이책으로 사서 읽고 연달아 ‘규장각’까지 읽은 후, 한참이 지나 리디북스에서 ‘성균관’을 이북으로 최초 발행했을 때 이북까지 샀을 정도로 이 책들을 좋아했다. (이 책들은 결국 종이책, 이북으로 모두 갖추었다.)
처음엔 똑똑한 데다 예쁘기까지 한 남장여자 주인공이 씩씩하게 구조적 제약과 환경적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 그리고 가랑, 걸오, 여림, 이렇게 각각 매력 넘치는 세 남자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는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내 배우자를 고르는 것도 아닌데 가랑이 더 나을까 걸오가 더 나을까 계속 저울질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결국 가랑은 ‘빨강머리 앤’의 길버트와 함께 내세의 배우자 후보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흔하고 뻔한 남장여자 로맨스 소설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건, 결국 작가가 작품 전체를 아울러 촘촘하게 펼쳐놓은 해박한 역사적 지식이었다. ‘성균관’과 ‘규장각’만 봐도 정조 시대 과거제도와 그 광경, 관직과 업무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척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오늘 유퀴즈에서 들은 초계문신 제도가 반가웠던 것도 이 책들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누구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정은궐도 필명이다. 다만 나를 비롯해 내 주변에서 이 책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예상은 작가가 역사와 관계된 일을 할 거라는 거다. 여성일 거라는 예상도 많은데, 거기에 더해 내 예상 중 하나는 작가가 두 명(혹은 그 이상) 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책을 여러 번 읽다 보니 간혹 갑자기 문체가 달라졌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기 때문이다.
읽을 때마다 멋진 남자들 틈에서 역경을 극복해가는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데다 꽤 밀도 있는 역사적 지식까지 접할 수 있어서, 한동안 책을 손에서 놓게 되는 독서 권태기에 이 책들을 읽으면 다시 다른 책들을 읽기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 덕분에 벌써 6~7번은 완독, 읽다 만 것까지 하면 열댓 번은 읽은 것 같다. 부디 작가님께서 ‘홍천기’ 같은 판타지 말고 다른 역사 로맨스를 또 써주시고, 특히 ‘성균관’과 ‘규장각’ 팬들이 궁금해하고 기다려마지 않는 ‘여림외전’을 꼭 써주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규장각’에서 가장 좋아하고 공감하는 문장 몇 개를 남겨 본다.


“비밀이란 건 말일세…혼잣말이라 하더라도 입에 담는 순간 다른 귀가 듣기 마련이지. 때문에 그 내용이 긴요하면 긴요할수록 자신의 귀에게조차 입을 다물어야 하네.”
“대물은 나의 소중한 벗일세. 그 외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비밀을 숨기는 것이 벗의 도리라고 한다면 그것을 모르는 척해 주는 것도 벗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자네는 질문을 하지 않았네. 그리고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네.”
<‘규장각’ 1권, 걸오와 여림이 대물의 혼례식에 찾아가는 중에, 대물이 여인인 것을 여림이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의심하는 걸오에게 여림이 하는 말>


“젊음은 모든 여인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지만, 저 나이에 갖는 아름다움은 오로지 남편의 애정이 만들어준단다. 사내들은 영원히 아름다운 부인을 소망하면서도 그 소망이 제 하기 나름인 것을 몰라.”
<‘규장각’ 2권, 대갓집 부인들의 다과연에서 걸오의 어머니 황씨 부인이 며느리에게 가랑의 어머니 임씨 부인을 소개해준 뒤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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